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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신장. 자애로운 성군??

부제:그는 성격파탄자 키덜트였을까?


1. 언제부터인가 일본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직전신장은 사악한 환마왕,광기에 미친 정복자가 아니라 자애로운 중세 일본판 예수?라는 학설이 등장하면서 그의 이미지가 좀 변화했습니다. 졸라게 마음씨 좋은 직장상사?라는 겁니다. 임원이나 고위 사관들에게는 사탄이지만 일개 평사원이나 병사,인민들에게는 자애로운 성군이랍니다....(...) 직전신장 정도 되는 최고 통치자가 일개 병사나 인민들을 일일이 맞상대할 이유는 없지만 대다수 인민들이야 그의 실체를 제대로 알수 없으니 그저 좋아라 하겠지요. 비슷한 예시로 정치는 @같이 해서 궁정에서는 미움받지만(내색할수 없어도) 잉글랜드의 헨리8세도 대다수 인민들에게는 사랑받았지요.

하지만 그가 의외로 너그러운 통치자라고 해도 - 사견이지만 -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봉건제후가 자신이 통치하는 봉토에서 최대한의 단결과 충성심을 유도하는 통 큰 남자,최고 서열1다운 자애로움이야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내부에 문제가 많다는 다른 봉건제후들도 병사들이나 인민들에게는 너그러운 통치자가 아니었을까요. 비슷한 예시로 야쿠자의 수괴들도 인협을 내세우며 휘하 조직원들에게 충성심을 이끌어 내잖아요. 자금 여건이 좋은 야쿠자 조직은 말로만 인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들에게 베풀어 주는 용돈이 넉넉하지요.


2. 일본 현지에서 둘째치더라도 국내에서 직전신장 = 어진 성군? 이라는 학설이 퍼지게 된 것은 네이버에서 활동하는 모 블러거님의 일방적인 주장이(절대로 이 분야에 연배가 있으신 아케치님의 블로그가 아님!) 만인지성?의 모 위키에 복사붙이기로 서술되어 있을뿐입니다. 진짜로 일본학계에서 그렇게 연구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0_0) 사실 이런 이야기가 넷상에 퍼지기 이전부터 일본 사극에서는 대체적으로 직전신장의 모습을 - 본능사 쿠데타 시기에 근접하는 폭군으로 타락하기 이전 -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오는 주인공과 그외 조력자들에게는 상냥하고 공정하고 파격적인 개혁정치를 보이는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합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3. 제 아무리 직전신장이 너그럽고 인협이 넘치는 정복자라고 해도 그는 신하의 분노를 사서 본능사 쿠데타로 죽은 실패한 통치자입니다. 아무리 재해석을 한다고 해도 본능사 쿠데타는 직전신장의 용인술,가신 통치의 명백한 실패였으며 폭군에게 작렬하는 반정이었지요. 직전신장 맹신론자들은 그의 인자함을 강조하지만 "그럼 왜 본능사 쿠데타가 일어났냐?"라고 물으면 어버버버버!하고 제대로 된 분석조차 내놓지 못합니다. 이건 모 블러거님도 마찬가지. 직전신장에 대해서 새로운 재해석이다,그는 매력적이고 인협이 넘치는 상남자였다. 직전신장 찬송가를 부르기에 급급하지 쿠데타의 원인조차 추측하지 못합니다.

명지광수가 본능사 쿠데타 1년전에 서신을 통하여 직전신장에게 충의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1년이란 시간은 사람의 마음이 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아니지. 고작 며칠이라도 변할수 있는게 사람 마음이지요. 비슷한 예시로 로마의 콤모두스 천황을 살해한 몇명 측근들도 딱 그런 사례지요. 고대~중세 동양사에서도 그렇게나 충의를 맹세했지만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고 임금이나 고위 서열에게 반정의 칼을 들이대는건 흔한 일입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본능사 쿠데타 1년전에도 명지광수는 겨우겨우 참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4. 역알못의 사견입니다만 저는 직전신장을 자애롭고 관대한 인협 상남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 역시 전국시대 일본의 많고 많은 봉건제후중 한명이고 유별나게 박애주의가 넘쳐나는 귀족이라고 보지 않아요. 저는 직전신장의 성격이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휘하 가신들과 단결하고 관대함을 보이지만 고난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의 절정에 올라서 꽃길을 걷고 있을 시기에 오만함과 잔혹한 성격으로 변질되어서 가신들을 핍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막말로 아쉬울때는 성군. 여유로울때는 찌질하고 이기적인 본색에 솔직해진 것이지요.

굳이 명지광수뿐만이 아니라 시전승가(시바타 카츠이에)를 비롯해서 고참 가신들도 명지광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거칠 것이 없어진 직전신장에게 혹사당하고 모욕받는 것이 아닐런지. 신분이 비천하여 예의주시할 필요가 없었던 풍신수길을 제외하고 원래가 귀족,무사 신분이었던 기존의 가신들은 개차반 성질이 본색을 드러낸 직전신장에게 시달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풍신수길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닐 것이고 본색 드러낸 직전신장을 보면서 뭔가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5. 직전신장은 아쉬울때는 단결력을 강조하는 명군이지만 넉넉하고 풍족한 시기에는 자기 잘났다는 거만한 천손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나 싶어요. 직전신장은 성격파탄자이고 일본 천하 통일을 앞둔 시기에 그 본색을 드러냈다고 봅니다. 1580년대에 들어서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요. 타케다 신겐,우에스기 켄신도 죽었고 호죠 우지마사(이름이 맞는가?)는 제대로 싸우려고 하지 않고 모리 가문은 떡실신당하고 있고. 동북부의 이달정종은 한참 어린아이일뿐이고. 이러면 그동안 자제력을 발휘해서 억울렸던 잔혹하고 오만방자한 성격이 본색을 드러냈어요. 사실 직전신장은 금천의원,타케다 신겐,우에스기 켄신을 제외하면 딱히 그를 위협할만한 적수가 없었으며 고난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요. 쟁쟁한 봉건귀족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사망하거나 봉토에서 수성전만을 택하는 엄청난 행운이 겹쳤기에 직전신장의 천하제패는 수월했습니다. 뭐. 직전신장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운빨만 좋은 무능한 귀족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6. 직전신장이 언제부터인가 추악한 본색을 드러냈을까요? 추측인데 저는 그 분기점을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타케다 신겐이 사망했다고 해도 그의 아들 카츠요리가 건재하며 혹여나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군웅이 될지도 모르지요. 확실히 카츠요리를 격퇴하기 전에는 직전신장이 구상한 천하포무 계획에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후세의 한일 전국시대 팬덤들의 생각은 제껴두고 그 당시 중세일본 현지에서 직전신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나가시노에서 직전신장은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날 이후 카츠요리는 7년뒤에 쓸슬히 자결하는 날까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직전신장은 꽃길만 걸으면서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았어요. 이러면 사람이 충분히 망가지고 이기적인 본색이 드러낼만합니다. 어쩌면 직전신장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최초의 전투. 오케하자마에서 참살한 금천의원과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지요.


7. 직전신장은 임종한 부친으로부터 당주 직위를 계승하고 친형제와내란을 벌이는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그는 사랑받지 못해서 망가졌구나!라고 짐작하게 해줍니다. 삐둘어진 성격에다 어린 시절에는 해괴한 행동으로 악평을 받았고 당주가 되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가신들이 얄미운 아우 아래에 집결해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나! 친어머니는 동생(형제)만 편애하면서 배신하지 않나! 같은 친인척들과도 봉토를 둘러싸고 싸워야 하지 않나! 이 정도 나이 서른도 안 된 직전신장이 충분히 망가질만합니다. 현대사회로 치면 장기적인 정신과 상담/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중증의 조현병 기질이 보이기도 합니다. 직전신장은 마음의 상처가 가득한 몸만 큰 어린 아이라는 겁니다. 결정적으로 금천의원이 3~4만명이 대군세를 이끌고 쳐들어 오고 -  혹은 교토로 가는 길에 쳐들어 왔다고 하고 - 어찌어찌해서 오케하자마에서 승리하고 그후 나가시노 전투까지 앞만 보고 달려간 인생이었습니다. 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제심을 버리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고 판단한 시기부터 폭주하면서 망가진 것은 변명이 여지가 없네요.



ps. 직전신장은 본능사 쿠데타가 발발하지 않아도 주요 가신들의 전면적인 쿠데타,결정적으로 풍신수길에게 패배하여 용상에서 끌어 내려질 것 같아요. 제2의 궁예 꼴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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