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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아돌프의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 자작 소설

"아돌프의 어머니 말이에요. 아아아아아. 기억나요. 이 늙은이가 생각이 나는군요. 알로이스 히틀러씨의 아내,클라라 말이지요. 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클라라는 평생동안 두명의 남자와결혼했는데 한명은 아돌프의 생부 찰스 히틀러였고 다른 한명은 아돌프에게는 사실상의 아버지가 되는 계부,알로이스 히틀러였어요. 히틀러 일가는 부유한 은수저 가문이었어요. 클롭슈톡부르크에서는 상류층 거주구역에서는 제일 지위가 낮았지만 상당히 넓은 정원을 가진 화려한 저택에서 살았지요. 중세시대 말에서 계몽시대 초기 어느 귀족가문이 지었다는 저택을 알로이스씨가 매입해서 히틀러 가문의 저택이 되었어요. 당시 클롭슈톡부르크에서는 AA지구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최하위 금수저 혹은 은수저 아니면 최상위 쇠수저(중산층)는 되었지요. 히틀러 가문은 상류층 사회에서는 명함을 내민지는 200년은 안된 신참자였지요.


히틀러 가문의 저택을 중심으로 최하위 은수저 집안 몇개의 저택과 최상위 쇠수저 시민들의 자택이 둘러싸여 있었지요. 알로이스씨는 이웃사람들에게 친절했어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공식적으로는 비스마르크 대공국의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암흑가의 조직을 거느리는 대행수라고 들었지만 이웃사람들에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알로이스씨는 재정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이자로 money를 빌려주기도 했고 상환기간을 넉넉히 잡아 주었지요. 알로이스씨에게 채무금을 빌린 이우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급전이 필요한 위기를 넘겼고 제 기한에 money를 갚았지요. 물론 알로이스씨는 채무자가 전체 채무금의 80%,형편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50%만 갚아도 나머지 잔액은 탕감해주었답니다. 아주 자애롭고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오호호호호. 어머나! 클라라씨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기자 선생. 아이고. 이 늙은이 정신을 좀 봐.


클라라 히틀러 여사. 흐음. 이웃사람들에게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여성이기는 했지만 남편과는 다르게 그녀는 이웃사람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어요. 뭐랄까? 거만하거나 악랄한 성격은 아닌데 그저 자신의 수준에 안 맞는다고 이웃사람들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상류층 귀부인었어요. 사실 히틀러 가문은 귀족은 아니더라도 부유한 대부호 가문이었고 안주인이었던 클라라 여사의 태도는 그럴만도 했어요. 사실 클라라 여사는 나름대로 수준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은수저 집안 안주인들하고만 교류했어요. 최상위 쇠수저라고는 하나 일개 중산층,자유시민들과 격식없이 어울리는 남편과는 많이 달랐지요.


그녀는 아들의 양육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해요. 집안에는 시중을 들어줄 남녀 고용인들이 백명도 넘게 있고 클라라는 평일 오전부터 화려하게 가꾼 정원에서 일본 소설을 읽거나 홍차를 마시면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보냈어요. 제가 클라라가 정원에 나와 있는 모습을 자주 보기는 했어요. 오전 시간대에 집에 있는 경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어요. 클라라는 벤츠 리무진을 타고 클롭슈톡부르크의 중심 시내로 쇼핑을 갔어요. 클롭슈톡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는 일본의 미쓰비시 백화점에 거의 매일 들락거렸고.......(...) 당연히 쇼핑하러 가는 것이지 눈으로 구경하러 가는건 아니지요. 백화점내에서는 최우수 고객중에 한명이었지요. 상류층 여자라고 해도 평일에 할일 없이 유유자적하게 쇼핑을 하러 간다면 히틀러 가문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짐작이 가겠어요!!! 클라라 여사는 백화점에서는 외상으로 상품을 매입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제가 백화점 근방의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친척에게 들었는데 클라라 히틀러 부인은 백화점에서 언제나 거액의 수표로만 상품가격을 지불했어요. 주말에는 수도인 슈타우펜베르크의 미쓰비시 백화점 중앙지점으로 쇼핑을 가지요. 그녀가 쇼핑하러 갈때는 은수저 계급의 동년배 여사들과 같이 동행하지요.


쇼핑을 가는게 아니라면 클롭슈톡부르크에서 부유한 귀부인들의 사교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들었어요. 제가 가정부들의 최고 책임자에게 들은 이야기지요. 중산층 계급인 제가 히틀러 여사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고 어디를 가는지는 모를수 밖에 없지요. 그저 소문으로 듣거나 친하게 지내는 히틀러 가문의 가정부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클라라 여사의 근황을 줏서 듣는 것 뿐이지요. 어쨌든 클라라 여사는 아들과 같이 있는 경우는 제가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아들과 같이 있는 경우가 굳이 있다면 알로이스씨가 이웃사촌들을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는 정원만찬에서 남편과 아들하고 모습을 드러낸 파티 당일뿐이었어요. 그나마도 남편과 같이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친아들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었지요. 아돌프는 계부 알로이스 곁에서만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주로 동년배 소년들과 어울렸어요. 우리는 아들을 소외시하는 클라라 여사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알로이스씨는 너그러웠고 근방의 사람들은 모두 알로이스씩에게 큰 신세를 지었기에 클라라 히틀러 부인이 아들을 냉대하는 듯한?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모자 관계에는 아무도 의문을 품거나 언급하지 않았어요. 남정네들이 맥주홀에서 마시면서 잡담을 나누는 시간에도 누군가 히틀러 부인을 언급하려고 하면 연배있으면서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조용히 중단시켰지요. 히틀러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고 정치나 축구 이야기를 하자고..... 그리고 여편네들의 잡담을 나누는 친목시간에도 아무도 히틀러 부인을 언급하지 않아요. 여자 셋만 있어도 주방이 불타버린다는 유서깊은 격언이 무색하게 수다스러운 여편네들조차 히틀러 모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주로 제가 그런 언급 자체를 못하게 무언의 압력을 넣어요. 맥주홀이나 가정집의 응접실에서든지 근방의 이웃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하는 대표자 역할을 맡는 것이 저하고 제 남편이었거든요.
 

클라라 여사는 한번도 아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주로 히틀러 저택의 메이드장에게 들은거에요. 하다못해 아직 3,4살도 되지 않은 아돌프에게도 모유를 먹이지 않았어요. 어린 아기,아돌프에게 모유를 먹이는건 가정부중에서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유모들이 맡아서 했어요. 아직 아돌프의 친부,찰스 히틀러가 살아 있었던 시기에도 아들에게 냉담했어요. 출산직후라면 너무 고통이 심해서 그런가 하는데 애가 태어난지 1년 이상 지났는데도 그러는 거에요. 하지만 아이의 친부가 살아있을 시기에 그랬어요. 아차. 어째서 찰스 히틀러씨를 알고 있냐고요? 히틀러 저택이 처음 지어졌을때 집주인은 찰스 히틀러씨였어요. 아돌프가 20살이 되어서 장성하는 때까지 살았던 저택은 알로이스씨가 좀 더 크고 화려하게 재건축한겁니다. 찰스 히틀러씨가 대공이 전제통치를 하던 시절에 어느 귀족이 내연녀를 위해 지은 안가를 매입하고 새로 재건축한 저택은 알로이스씨가 재건축한 저택보다는 1/3 규모였어요. 그 정도만으로도 AA지구에서는 돋보이는 화려하고 멋진 집이었어요. 호호호호호. 아돌프군은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장성했답니다.


불행하게도 아돌프가 세살때 찰스 히틀러씨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폭탄테러에 휘말려서 사망하고 말았어요. 그분의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저희 내외도 마찬가지였어요. 참으로 좋으신 사람이었는데 너무 일찍 주님의 곁으로 가고 말았어요. 장례식때 클라라 히틀러 부인이 얼마나 오열하고 상심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져 오네요. 그 때 장례식을 지켜본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어린 유복자를 대신해서 장례식을 주관한 사람은 찰스 히틀러씨의 방계쪽  친척인 알로이스 히틀러씨였어요. 장례식에는 직계,방계 가리지 않고 히틀러 가문의 사람들이 거의 다 참석했어요. 라우발이든가 크반트든가? 한프슈탱글 어쩌고 하는 상류층 가문의 사람들이 많이 조문을 왔어요. 그리고 클롭슈톡부르크의 내노라 하는 명사들도 조문을 왔지요. 저희 내외가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나 알수 있는 명사들이 보여서 많이 놀랐어요. 차후에 메이드장에게 들었는데 대공의 공실에서도 시종무관이 와서 조문했다고 해요. 대공 전하의 가문에서도 조문을 왔다는 것만 봐도 찰스 히틀러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지 짐작이 되요.


찰스 히틀러 씨의 장례식이 끝나고 몇달동안은 클라라 히틀러 부인은 상심에 빠져서 저택에 틀어박혀서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히틀러 가문의 일을 맡아서 처리하던 사람은 어린 아돌프의 후견인 역할을 맡은 알로이스씨였어요. 뭘 모르는 호사가들은 알로이스씨가 미망인과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황당한 헛소문을 퍼뜨리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애초에 찰스 히틀러씨가 보유한 막대한 재산은 알로이스 히틀러씨가 분할해 줄거에요. 그 정도 자산을 가지고 집을 짓고 광대한 부동산을 보유할수 있었던 것은 찰스 히틀러씨의 역량이었어요. 알로이스 선생이 보유한 자산에 비하면 찰스 히틀러씨가 보유한 자산은 1/40도 되지 않았어요. 그만큼 알로이스씨가 소유한 재화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일개 늙은 주부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1887년에 신문을 읽어보니 국세청에서 공개한 세금내역만 비교해 봐도 알로이스씨와찰스씨의 자산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요. 알로이스씨는 찰스씨보다 15배는 더 많은 금액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었어요. 물론 찰스 히틀러씨가 납부하는 세금도 우리 같은 일개 자유 시민에 비교하면 26배가 넘지요.


알로이스씨가 유복자와미망인의 자산을 노린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알로이스씨가 오히려 더 많은 재화를 분할해주면 주었지 그 분에게는 푼돈에 불과한 고인의 유산을 가로챌 이유따위는 전혀 없어요. 그러고 보면 아돌프는 정말로 행운이 넘쳐나는 아이였어요. 친부가 일찍 별세했다고 해도 남겨둔 막대한 유산 덕분에 평생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는데도 부유하고 강한 힘을 가진 방계쪽 친척 아저씨가 새로운 계부가 되어 버팀목이 되어 주니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찰스 히틀러씨의 장례가 끝나고 몇달 후에 직계 히틀러 남자들이 모여서 미망인의 재혼을 추진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름대로 잘나고 부유한 히틀러 가문의 직계 남자들이 미망인과 유복자를 맡아 주는 것을 슬슬 피했어요. 입으로는 찰스의 미망인과 유복자를 내가 맡아서 보살피겠다고 너도 나도 호언장담했지만 결국은 직계가 아닌 방계의 알로이스씨가 클라라 여사의 재혼상대가 되었어요.


히틀러 가문의 메이드장에게 들어보니 - 찰스,알로이스가 집주인으로 있던 시절부터 안주인 클라라가 죽을때까지 근무했다 - 원래대로라면 직계 본가에다 족보상 15촌 친척인 '테오도어 히틀러'씨가 재혼상대라고 거론되었지요. 그런데 테오도어씨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미망인과 유복자를 책임지는 것을 피했어요. 결국 36촌이나 먼 방계친척인 알로이스씨가 미망인의 재혼상대가 되었어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타인의 입장에서도 당시 사회적인 정서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요. 지역 여론에서도 당연히 테오도어 히틀러씨가 아돌프의 의붓아버지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테오도어씨는 능글거리는 미소가 얄미웠지만 매력적이고 잘 생긴 미남이었어요. 테오도어씨는 여러 명의 후실부인을 두었지만 정실부인의 자리는 비어 있었어요. 당연하게도 내연녀 따위에게 정식 아내의 자리를 줄 수 없는 것이 당시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인 사회적 계율이었어요. 법적으로도 그렇고요.


알로이스 히틀러씨가 아돌프의 의붓아버지가 된 이후에 AA지구에는 다시 활기가 돌아왔어요. 아돌프가 네살이 되던 해,친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1년후에 알로이스씨가 미망인과 재혼하게 되었어요. 클라라 여사하고 마찬가지로 알로이스씩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전의 아내와이혼한 상태였어요. 두 사람의 결혼식은 미망인의 전 남편이 사별한 다음해에 열렸기에 적당히 자제를 하여 성대하면서도 격식있게 열렸지요. 상류층과 사회적 명사들은 물론이고 이웃사람들도 초청되었어요. 알로이스씨와재혼한 이유로 클라라씨는 다시 원기를 회복했어요. 기존의 저택은 더 크고 화려하게 재건축되었지요. 대외과시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히틀러 가문의 위상에도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이 필요했어요.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지요. 화려하게 지어진 저택과 정원은 침울해진 클라라씨가 다시 미소를 띄우게 해줬어요. 클라라씨는 다시 활발하게 상류층 사교모임에 출석하고 쇼핑을 즐기고 미술관에서 명화를 구입하고 오페라를 감상하려 다녔지만 아들과는 완전히 선을 긋고 거리를 두었어요.


아들프가 유아기를 벗어나서 학교에 다니고 18살이 되던해에 라우발 가문의 영애,겔리 라우발과(아돌프 히틀러의 유일한 합법적인 아내이며 아돌프는 겔리에게서 3남 2녀를 얻었다.) 혼인하던 날에도 클라라 여사는 아들에게 미소지어 주지 않았어요. 언제나 아들을 보는 시선은 소가 닭을 쳐다보는 시선이나 다름없었어요. 두번째 남편이며 아돌프의 의붓아버지인 알로이스씨는 아돌프가 결혼하고 4년후. 아들이 22살이 되던 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절하고 말았어요. 나이 예순도 되지 않은 분이 참으로 딱해요. 하지만 이미 아돌프는 장성하였고 아내를 맞이하였고 첫 아들까지 얻었어요. 찰스씨와알로이스씨가 축적한 막대한 재화,사회적인 영햑력,휘하의 조직,정부기관의 직위,연방의회 대의원의(상류층 인사에게 주어지는 명예직.) 직위까지 세습했어요. 클라라씨는 알로이스씨가 별세하던 날에 크게 상심하였지만 찰스씨가 별세하던 해처럼 충격은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담담했다고 해야 하나?


클라라 히틀러 부인은 아들에게 무관심했듯이 며느리와손자,손녀들에게도 냉담했어요. 늘 그랬듯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빠져 살았고 아들 내외와거리를 두었지요. 아돌프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하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도 소홀해졌고 아돌프는 어머니가 별세하는 당일에는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실 소식이 전해진다고 해도 하루만에 오는건 무리였기도 해요. 나치당의 원내대표가 된 이후에는 대외적으로는 자신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사실을 여론을 통해 강조했지요. 신문에 실리는 사진에는 어머니를 챙겨드리는 배려깊은 아들,아돌프 히틀러를 볼 수 있지만 오랫동안 히틀러 모자를 지켜본 이웃사람들은 절대로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취재를 하러 오는 기자들 앞에서는 이미 이야기를 맞춰준대로 히틀러 모자의 애정과 결속력을 칭찬했어요.


클라라씨는 1915년 이후에 급속도로 노쇠해졌고 1920년 이후에는 첫번째 남편과의 추억이 많은 호프베르크의 별장에서 지내면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어요. 1927년. 아돌프가 수데텐란트의 총리에 취임하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러 클록슈톡부르크의 저택으로 몰려왔지만 클라라 여사는 힘없이 웃을 뿐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돌프는 이날 히틀러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친아버지와의붓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연설을 읊었어요. 그날은 히틀러 모자가 만난 마지막 날이었지요. 그리고 다음해 3월. 클라라 히틀러 부인은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서 간병인이 읽어주는 일본소설을 듣다가 눈을 감고 잠이 들어버렸지요.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어요.


아돌프는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클롭슈톡부르크로 달려왔지요.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뤄졌고 클라라 히틀러 부인은 호프베르크의 별장 근방에 안식처를 - 교회에 조성된 상류층 전용 묘지 - 마련한 첫번째 남편 찰스 히틀러씨의 곁에 묻혔어요. 히틀러 내외의 무덤은 나란히 조성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 연합군은 나치 잔당들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하여 히틀러 내외의 관을 파내어서 다른 곳으로 이장되고 말았어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아돌프의 의붓아버지 알로이스씨의 유골이 매장된 격식있으면서 화려한 무덤은 언제나 클롭슈톡부르크 근방의 교회 묘지에 있었지만 1946년. 클롭슈톡부르크에 아메리카군은 전술핵을 투하했고 도시 전체가 핵폭발에 소멸하면서 같이 쓸려나갔지요. 아아아아아. 알로이스씨. 유쾌하셨던 그분이라면 당신의 사후에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계셨을거에요. 그분이라면 자신의 무덤과 고향도시가 핵폭발로 소멸되는 것을 박장대소하시면서 천국에서 지켜보셨을거에요. 우리 가족도 고향을 잃었지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요. 알로이스씨가 별세하기 전에 이웃사촌들에게 유로화로 몇백만 유로씩 나누어 주셨고 우리 내외는 막대한 money를 아메리카 은행에 저축을 해놨기에 유사시,전란에서 빠져나와 우리 가족은 몸을 피할수 있었어요. 하여간에 알로이스씨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웃사촌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줘요.


저희 내외나 아들과 며느리,딸과 사위,손주들. 우리 가족은 솔직히 클라라 히틀러 부인에게 아무런 감상도 없고 애정도 없어요. 그분이 이웃사촌들에게 무관심하셨든지 이웃사촌들에게는 히틀러 부인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아무런 비중도 없는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찰스 히틀러씨,알로이스 히틀러씨와그분들의 아들 아돌프 히틀러가 중요한 비중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이 늙은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요. 아돌프가 저질렀던 일이나 전쟁,그로 인하여 벌어졌던 비극,결과 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그저 히틀러 가문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늙은이라고 생각해줘요."  



* 기원후 1949년. 뉴욕타임즈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고향,클롭슈톡부르크에서 살았던 히틀러 일가의 이웃사촌이었던 프레데리카 그린힐(가명)씨를 취재한 기사에서 발췌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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